반응형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 Ernest Hemingway, USA 1952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 Ernest Hemingway, USA 1952 그는 너무도 소박해서 자신이 언제부터 겸손해졌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겸손하다는 건 알고 있었고, 겸손은 하찮을 것도 아니고 자부심을 잃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육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상관이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난 언제나 아바나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돌아갈 수 있어.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시간이 남았고, 그전에 녀석이 올라올지도 몰라. 그때까지 올라오지 않는다면 달과 함께 떠오를 거야. 그때까지도 올라오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 해가 뜰 때엔 올라오겠지. 내 몸은 아직 뻣뻣하지 않고 팔팔해. 주둥이에 낚싯바늘을 꿰.. 2020. 5. 19. 인간실격 (人間失格) - 다자이 오사무, Japan 1948 인간실격 (人間失格) - 다자이 오사무, Japan 1948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야 누구라도 남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화를 내면 기분 좋을 리 없겠지만, 나는 화를 내는 사람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무서운 동물의 본성을 보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 본성을 감추고 있지만 어느 겨를에, 이를테면 소가 풀밭에서 느긋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가도 배에 붙은 등에를 꼬리로 찰싹 쳐서 죽이듯이, 느닷없이 인간의 무시무시한 정체를 분노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할 때면 나는 항상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전율을 느끼고, 이런 본성 또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격 가운데 하나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 .. 2020. 5. 19. 시계 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 Anthony Burgess, UK 1962 시계 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 Anthony Burgess, UK 1962 자, 이제 어떻게 될까? 그 다음 차례는 자선을 베푸는 일이었는데, 그건 먼저 돈을 써 버림으로써 상점 털기 같은 짓을 할 동기를 만드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또 우리의 알리바이를 미리 돈으로 사는 일이기도 했지. 나는 마치 파도 거센 바다 위에서 배를 탄 이발사처럼 면도칼을 휘둘렀고, 기름기 흐르는 더러운 얼굴에 칼질을 해서 놈을 잡으려 했지, 그래서 여러분, 나는 왼쪽으로 두 번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 세 번씩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듯이 놈의 왼쪽 뺨, 오른쪽 뺨에 만족스럽게 칼질을 했어. 놈이 그것을 쳐들자 뱀처럼 쉭 소리가 났지. 놈은 내 눈퉁이 부근을 예술적으로 우아하게 맞혔는데 난 용케 제.. 2020. 5. 19.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 William Somerset Maugham, France 1919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 William Somerset Maugham, France 1919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봐야 해.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 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이제 와서 그의 위대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위대성이.. 2020. 5. 19. 결투(Duel) - Richard Matheson, 1971 USA 결투(Duel) - Richard Matheson, 1971 USA 그때 갑자기 트럭이 으르렁거리며 왼쪽 차선을 지나갔다. 그 바람에 차가 조금 흔들렸다. 트럭은 다시 핸들을 꺾어 서쪽 차선으로 들어왔지만 너무나 급작스러운 탓에 만은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부랴부랴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도대체 넌 뭐 하는 작자냐?' 그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차를 반대 차선으로 조금 옮겼다. 그는 페달을 더 밟아 차를 완전히 반대 차선으로 빼냈다. 만은 뒷거울로 트럭을 체크하면서 원래 차선으로 들어왔고 그리고 다시 앞쪽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트럭 운전사가 있는 대로 클랙슨을 눌러 댔다. 만은 깜짝 놀라 뒷거울을 보았다. '도대체 뭐야?' 갑자기 트럭의 엔진 소리가 커지는 바람에 그는 얼른 뒷거울을 보고 다시 .. 2020. 5. 19. 마술 가게 (The Magic Shop) - Herbert George Wells, UK 1903 마술 가게 (The Magic Shop) - Herbert George Wells, UK 1903 솔직히 나는 그 가게가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가게가 서커스 근처나, 옥스퍼드 가 모퉁이나, 홀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 가게는 길 건너편에 마치 신기루처럼 서 있고 약간은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분명히 여기에 있었으며, 그곳을 가리키는 깁의 통통한 손가락 끝은 유리에 닿아 소리를 냈다. 그 남자는 판매대 뒤에 있었는데, 생김새가 어딘지 이상하고 창백하고 음침했으며, 한쪽 귀가 다른 쪽 귀보다 컸고, 턱은 구두 앞코 같았다. "저 문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건 오로지 바른생활 소년뿐이지." 남자는 이제 깁을 사로잡았다. 남자는 내 손가락을 잡고 있던 깁을.. 2020. 5. 19. 공포 (Terror) - Anton Chekhov, Russia 1892 공포 (Terror) - Anton Chekhov, Russia 1892 "말 좀 해보시오, 친구. 무시무시하거나 비밀스럽거나 환성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어째서 실제의 인생으로부터가 아니라 꼭 유령이나 저승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말해 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 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40명의 순교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를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아내가 되겠어요 라고. 하지만 지금은 귀신이 잡아가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안개처럼 모호한 얘기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2020. 5. 19. 관리의 죽음 (Death of a Clerk) - Anton Chekhov, Russia 1885 관리의 죽음 (Death of a Clerk) - Anton Chekhov, Russia 1885 어느 멋진 저녁, 이에 못지않게 멋진 회계원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서 오페라글라스로 을 보고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그는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눈을 희번떡거리며 숨을 멈추었다. 그는 오페라 글라스에서 눈을 떼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 에취!!! 보다시피 재채기를 한 것이다.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 "제가 침을 튀겼습니다, 각하... 용서하십시오." "기억나실는지 모르겠지만, 각하, 어제 아르카지이 극장에서..." "각하! 제가 감히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된 이유는 외람된 말씀이.. 2020. 5. 19. 토비아스 민더니켈 (Tobias Mindernickel)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토비아스 민더니켈 (Tobias Mindernickel)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해 가져야 할 자연스러운 우월감이나 자신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 같다. 그는 모든 것이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사람과 사물을 대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비굴하게 시선을 내리깔고 만다. 주체할 수 없는 엄청난 분노가 민더니켈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 손으로 까만 지팡이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에사우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리더니 깨갱거리는 강아지를 힘껏 후려쳤다. "감히 내 말을 안 들어? 감히 내 말을 안 들어?" 토비아스는 한동안 이 비굴한 존재를 묵묵히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한 번은 방을 후다닥 빠져나간 에사우가 계단을 지나 거리로 뛰쳐나가는 .. 2020. 5. 19. 굶주리는 자들 (Die Hungernden) - Thomas Mann, Deutschland 1903 굶주리는 자들 (Die Hungernden) - Thomas Mann, Deutschland 1903 데틀레프는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는 순간 슬그머니 소란스러운 축제 자리를 떠나 작별 인사도 없이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아직도 나눌 대화가 남았을까? 아, 저들은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순진무구함과 소박함, 밝음, 명랑함의 샘에서 물을 긷듯 저렇게 끊임없이 가볍게 대화를 꾸려 가는구나! 그러나 그는 어떤가? 몽상과 인식의 삶으로,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드는 통찰과 창작의 압박으로 진지하고 느려 빠지기만 해서 저들의 대화에 동참할 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을 떠났다. '우리는 누구와 사랑의 결합을 이루는가? 항상 우리처럼 괴로워하고 그리워하.. 2020. 5. 19. 신동 (Das Wunderkind) - Thomas Mann, Deutschland 1903 신동 (Das Wunderkind) - Thomas Mann, Deutschland 1903 신동이 들어오자 홀 안이 조용해진다. 잠잠해진 가운데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옆쪽 어디에선가 우민의 지도자인 세습 군주가 먼저 박수를 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아이와는 상관없이 벌써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박수갈채를 끌어내는 이 꼬마의 솜씨는 얼마나 노련한가! 가리개 뒤에서 청중들을 기다리게 하고, 무대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약간 머뭇거리고, 오래전부터 질렸을 화환의 알록달록한 공단 리본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즐겁게 살펴보고, 또 귀엽고 망설이듯 인사하고, 청중에게 미친 듯이 박수를 칠 시간을 주어서 그들의 손이 만들어 내는 귀중한 소리가 하나도 헛되지 않게 할 줄 알았다. '부엉이는 내 히트.. 2020. 5. 19. 토니오 크뢰거 (Tonio Kröger) - Thomas Mann, Deutschland 1903 토니오 크뢰거 (Tonio Kröger) - Thomas Mann, Deutschland 1903 토니오는 입을 다물었다. 눈빛이 어두워졌다. 한스는 오늘 점심에 같이 산책하기로 한 걸 잊고 있다가 이제 다시 떠올린 게 분명했다. 토니오 자신은 이 약속을 한 뒤로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이 순간만 손꼽아 기다려 오지 않았던가! 토니오게게 자작시를 적은 공책이 있다는 사실이 본인의 실수로 알려지면서 학우와 교사들은 그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남들의 이런 반응에대해 토니오는 화를 내는 것이 바보 같고 저급하게 여겨져, 그렇게 대응하지는 않고 오히려 학우와 교사들을 경멸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지 않아도 평소에 매너리즘에 빠진 그들의 사고방식을 역겨워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 약점을 신통하게도 훤.. 2020. 5. 19. 행복에의 의지 (Der Wille zum Gluck) - Thomas Mann, Deutschland 1896 행복에의 의지 (Der Wille zum Gluck) - Thomas Mann, Deutschland 1896 이런 무표정한 얼굴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우리 둘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렸고, 그래서 붉은 수염 선생님이 우리를 나란히 앉게 했을 때 무척 기뻤다. 그 뒤로도 우리는 계속 붙어 다녔고, 함께 교양을 쌓고 매일 도시락을 바꾸어 먹었다. 학창 시절 내내 우리의 우정은 처음에 생겨났을 때와 비슷한 이유로 계속 유지되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동급생들에 대한 '거리 두기의 파토스' 였다. 열다섯 살에 남몰래 하이네를 읽고, 김나지움 4~5학년에 세상과 인간에 대한 확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파토스였다. 파올로는 집까지 가는 내내 흥분해 있었다. 아니,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2020. 5. 19. 키 작은 프리데만 씨 (Der kleine Herr Friedemann) - Thomas Mann, Deutschland 1896 키 작은 프리데만 씨 (Der kleine Herr Friedemann) - Thomas Mann, Deutschland 1896 그건 보모 탓이었다. 처음 의심이 들었을 때 그런 나쁜 습관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프리데만 영사 부인이 따끔히 타이른 것도 소용이 없었고, 매일 영양가 많은 맥주 외에 적포도주를 한 잔씩 준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지가 뒤틀린 채 실룩거리는 갓난아이를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살피던 의사가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시절 요하네스는 아름다운 꽃이 늘 활짝 피어 있는 거실 창가에 조그만 걸상을 갖다 놓고 어머니 발치에 앉아, 정갈하게 탄 가르마 부분이 벌써 하얗게 센 어머니의 머리와 선하고 온화한 얼굴을 쳐다보고, 어머니의 몸에서 항상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을 마.. 2020. 5. 19. 청결하고 불빛 밝은 곳 (A Clean, Well Lighted Place) - Ernest Hemingway, USA 1933 청결하고 불빛 밝은 곳 (A Clean, Well Lighted Place) - Ernest Hemingway, USA 1933 "지난주에 자살해 버리지 그러셨어요." 그가 귀먹은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조금 더." "자넨 젊고, 자신감 넘치고, 일자리도 있지." 나이가 위인 웨이터가 말했다. "자넨 모든 걸 갖고 있지." "그럼 아저씨는 뭐가 없는데요?" "일 빼곤 모두 다." "난 카페에 늦게까지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하나야. 밤이면 잠 대신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카페에 있고 싶어." "전 집으로 가서 잠자리에 들고 싶어요." "우린 서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지. 난 밤마다 카페 문을 닫는 게 싫어. 카페 문이 열려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봐." 그.. 2020. 5. 19.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3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