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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 (Der Bajazzo)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어릿광대 (Der Bajazzo)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 다 지나 놓고 나서 품위 있게 결론 내리자면, 나는 내 인생과 그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구역질 나는 혐오감이 목을 조르고, 나를 몰아 대고, 나를 흔들더니 다시 내팽개친다. 물론 어쩌면 이 가소롭고 하찮은 일을 조만간 서둘러 해결한 뒤 재빨리 도망치는 데 필요한 원심력도 이 구역질이 제공할지 모른다. 이번 달과 다음 달도 계속 이렇게 살고, 아니 석 달, 반년까지 계속 이렇게 먹고 자고 나름대로 할 일을 하면서 지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겨울 동안 겉으로 그래 왔던 것처럼, 기계적이고 잘 짜이고 차분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래 보였을 뿐, 속에서는 격렬한 해체 과정이 처절하게 진행되고.. 2020. 5. 19.
환멸 (Enttäuschung)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환멸 (Enttäuschung)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선생은 베네치아가 처음이시오? 기대하던 그대로인가요? 아니면 혹시 기대를 넘던가요? 아, 이렇게 아름다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군요! 정말입니까? 단순히 행복하고 부러워 보이려고 하는 말은 아니죠? 선생은 환멸이라는 놈이 뭔지 아시오? 자잘하고 개별적인 실패나 오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마련해 놓은 거대하고 일반적인 환멸 말이오. 선생은 분명 모를 거요. 하지만 나는 청소년기부터 환멸이라는 놈과 함께 살았고, 그놈은 나를 외롭고 불행하고 약간 괴팍한 인간으로 만들었소. 내게 인생은 전적으로 그런 거창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었소. 광활한 현실에 대한 동경, 어떤 형태로든 그 현실을 체험하고 싶은 갈망,황홀경.. 2020. 5. 19.
프랜시스 매컴버의 짧았던 행복 (The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 - Ernest Hemingway, USA 1936 프랜시스 매컴버의 짧았던 행복 (The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 - Ernest Hemingway, USA 1936 "자, 사자를 위하여!" 로버트 윌슨이 건배를 제안하며 말했다.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어요."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자신의 막사로 건너갔다. 울음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녀가 입고 있는 장밋빛 햇볕 차단용 셔츠 안에서 떨리는 어깨를 볼 수 있었다. "잊어야겠죠." 매컴버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날 위해 한 일만은 잊지 않을 거요." 여자들이란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동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가장 고약하고, 잔혹하고, 약탈적이며, 또한 매력적인 동물이지. 그들은 냉담함을 이용해 남자들을 약하게 만들거나 혼을 빼놓지... 2020. 5. 19.
세계의 수도 (The Capital of the World) - Ernest Hemingway, USA 1936 세계의 수도 (The Capital of the World) - Ernest Hemingway, USA 1936 그는 잘 다듬어진 검은 몸의 곱슬거리는 소년으로, 치아도 고르고 피부도 누나들이 부러워할 만큼 고왔다. 그는 야회복 차림으로 밝은 불빛 아래서 깨끗한 리넨을 들고 일하는 것이 좋았으며, 먹을 것이 풍부한 루아르카의 부엌은 그의 눈엔 낭만적이리만치 아름다워 보였다. 루아르카를 떠나 더 좋고 비싼 호텔로 옮긴 투우사는 한 명도 없었다. 2급 투우사들은 결코 1급 투우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정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제들과 스페인 경찰들은 죽여 버려야 한다는 키 큰 종업원의 말을 들을 때면 늘 흥분이 되곤 했다. 키 큰 종업원이 그에게는 곧 혁명이었.. 2020. 5. 19.
어셔가의 몰락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 Edgar Allan Poe, USA 1839 어셔가의 몰락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 Edgar Allan Poe, USA 1839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 건물을 언뜻 바라본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침울한 감정이 내 가슴속 한복판에 스며들었다. 편지에는 그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을 주는 구절 몇 군데가 있었다. 유서 깊은 그의 가문은 아주 옛날부터 지나치리만큼 예민하기로 유명했고, 그런 기질은 대대로 우수한 예술 작품을 통해 표출되었다. 정말이지 세상에 이토록 짧은 세월 동안 이렇게 무섭게 변해버린 사람은 로드릭 어셔 말고 누가 있을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갑자기 누이동생 메델라인이 죽었다는 말을 하고 정식 매장 전에 2주일간 거실 벽 뒤에 있는 지하실 속에 시체를 가매장할 작정이라고.. 2020. 5. 19.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 Ernest Hemingway, USA 1952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 Ernest Hemingway, USA 1952 ​ 그는 너무도 소박해서 자신이 언제부터 겸손해졌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겸손하다는 건 알고 있었고, 겸손은 하찮을 것도 아니고 자부심을 잃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육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상관이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난 언제나 아바나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돌아갈 수 있어.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시간이 남았고, 그전에 녀석이 올라올지도 몰라. 그때까지 올라오지 않는다면 달과 함께 떠오를 거야. 그때까지도 올라오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 해가 뜰 때엔 올라오겠지. 내 몸은 아직 뻣뻣하지 않고 팔팔해. 주둥이에 낚싯바늘을 꿰.. 2020. 5. 19.
인간실격 (人間失格) - 다자이 오사무, Japan 1948 인간실격 (人間失格) - 다자이 오사무, Japan 1948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야 누구라도 남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화를 내면 기분 좋을 리 없겠지만, 나는 화를 내는 사람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무서운 동물의 본성을 보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 본성을 감추고 있지만 어느 겨를에, 이를테면 소가 풀밭에서 느긋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가도 배에 붙은 등에를 꼬리로 찰싹 쳐서 죽이듯이, 느닷없이 인간의 무시무시한 정체를 분노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할 때면 나는 항상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전율을 느끼고, 이런 본성 또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격 가운데 하나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 .. 2020. 5. 19.
시계 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 Anthony Burgess, UK 1962 시계 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 Anthony Burgess, UK 1962 자, 이제 어떻게 될까? 그 다음 차례는 자선을 베푸는 일이었는데, 그건 먼저 돈을 써 버림으로써 상점 털기 같은 짓을 할 동기를 만드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또 우리의 알리바이를 미리 돈으로 사는 일이기도 했지. 나는 마치 파도 거센 바다 위에서 배를 탄 이발사처럼 면도칼을 휘둘렀고, 기름기 흐르는 더러운 얼굴에 칼질을 해서 놈을 잡으려 했지, 그래서 여러분, 나는 왼쪽으로 두 번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 세 번씩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듯이 놈의 왼쪽 뺨, 오른쪽 뺨에 만족스럽게 칼질을 했어. 놈이 그것을 쳐들자 뱀처럼 쉭 소리가 났지. 놈은 내 눈퉁이 부근을 예술적으로 우아하게 맞혔는데 난 용케 제.. 2020. 5. 19.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 William Somerset Maugham, France 1919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 William Somerset Maugham, France 1919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봐야 해.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 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이제 와서 그의 위대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위대성이.. 2020. 5. 19.
결투(Duel) - Richard Matheson, 1971 USA 결투(Duel) - Richard Matheson, 1971 USA 그때 갑자기 트럭이 으르렁거리며 왼쪽 차선을 지나갔다. 그 바람에 차가 조금 흔들렸다. 트럭은 다시 핸들을 꺾어 서쪽 차선으로 들어왔지만 너무나 급작스러운 탓에 만은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부랴부랴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도대체 넌 뭐 하는 작자냐?' 그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차를 반대 차선으로 조금 옮겼다. 그는 페달을 더 밟아 차를 완전히 반대 차선으로 빼냈다. 만은 뒷거울로 트럭을 체크하면서 원래 차선으로 들어왔고 그리고 다시 앞쪽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트럭 운전사가 있는 대로 클랙슨을 눌러 댔다. 만은 깜짝 놀라 뒷거울을 보았다. '도대체 뭐야?' 갑자기 트럭의 엔진 소리가 커지는 바람에 그는 얼른 뒷거울을 보고 다시 .. 2020. 5. 19.
마술 가게 (The Magic Shop) - Herbert George Wells, UK 1903 마술 가게 (The Magic Shop) - Herbert George Wells, UK 1903 솔직히 나는 그 가게가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가게가 서커스 근처나, 옥스퍼드 가 모퉁이나, 홀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 가게는 길 건너편에 마치 신기루처럼 서 있고 약간은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분명히 여기에 있었으며, 그곳을 가리키는 깁의 통통한 손가락 끝은 유리에 닿아 소리를 냈다. 그 남자는 판매대 뒤에 있었는데, 생김새가 어딘지 이상하고 창백하고 음침했으며, 한쪽 귀가 다른 쪽 귀보다 컸고, 턱은 구두 앞코 같았다. "저 문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건 오로지 바른생활 소년뿐이지." 남자는 이제 깁을 사로잡았다. 남자는 내 손가락을 잡고 있던 깁을.. 2020. 5. 19.
공포 (Terror) - Anton Chekhov, Russia 1892 공포 (Terror) - Anton Chekhov, Russia 1892 "말 좀 해보시오, 친구. 무시무시하거나 비밀스럽거나 환성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어째서 실제의 인생으로부터가 아니라 꼭 유령이나 저승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말해 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 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40명의 순교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를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아내가 되겠어요 라고. 하지만 지금은 귀신이 잡아가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안개처럼 모호한 얘기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2020. 5. 19.
관리의 죽음 (Death of a Clerk) - Anton Chekhov, Russia 1885 관리의 죽음 (Death of a Clerk) - Anton Chekhov, Russia 1885 어느 멋진 저녁, 이에 못지않게 멋진 회계원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서 오페라글라스로 을 보고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그는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눈을 희번떡거리며 숨을 멈추었다. 그는 오페라 글라스에서 눈을 떼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 에취!!! 보다시피 재채기를 한 것이다.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 "제가 침을 튀겼습니다, 각하... 용서하십시오." "기억나실는지 모르겠지만, 각하, 어제 아르카지이 극장에서..." "각하! 제가 감히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된 이유는 외람된 말씀이.. 2020. 5. 19.
토비아스 민더니켈 (Tobias Mindernickel)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토비아스 민더니켈 (Tobias Mindernickel)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해 가져야 할 자연스러운 우월감이나 자신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 같다. 그는 모든 것이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사람과 사물을 대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비굴하게 시선을 내리깔고 만다. 주체할 수 없는 엄청난 분노가 민더니켈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 손으로 까만 지팡이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에사우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리더니 깨갱거리는 강아지를 힘껏 후려쳤다. "감히 내 말을 안 들어? 감히 내 말을 안 들어?" 토비아스는 한동안 이 비굴한 존재를 묵묵히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한 번은 방을 후다닥 빠져나간 에사우가 계단을 지나 거리로 뛰쳐나가는 .. 2020. 5. 19.
굶주리는 자들 (Die Hungernden) - Thomas Mann, Deutschland 1903 굶주리는 자들 (Die Hungernden) - Thomas Mann, Deutschland 1903 데틀레프는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는 순간 슬그머니 소란스러운 축제 자리를 떠나 작별 인사도 없이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아직도 나눌 대화가 남았을까? 아, 저들은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순진무구함과 소박함, 밝음, 명랑함의 샘에서 물을 긷듯 저렇게 끊임없이 가볍게 대화를 꾸려 가는구나! 그러나 그는 어떤가? 몽상과 인식의 삶으로,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드는 통찰과 창작의 압박으로 진지하고 느려 빠지기만 해서 저들의 대화에 동참할 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을 떠났다. '우리는 누구와 사랑의 결합을 이루는가? 항상 우리처럼 괴로워하고 그리워하.. 2020.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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