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terature

환멸 (Enttäuschung)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by 토마스 만 2020. 5. 19.
반응형

 

환멸 (Enttäuschung)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선생은 베네치아가 처음이시오?
기대하던 그대로인가요?
아니면 혹시 기대를 넘던가요?
아, 이렇게 아름다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군요!
정말입니까?
단순히 행복하고 부러워 보이려고 하는 말은 아니죠?

 

선생은 환멸이라는 놈이 뭔지 아시오?
자잘하고 개별적인 실패나 오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마련해 놓은 거대하고 일반적인 환멸 말이오.
선생은 분명 모를 거요.
하지만 나는 청소년기부터 환멸이라는 놈과 함께 살았고, 그놈은 나를 외롭고 불행하고 약간 괴팍한 인간으로 만들었소.

 

내게 인생은 전적으로 그런 거창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었소.
광활한 현실에 대한 동경, 어떤 형태로든 그 현실을 체험하고 싶은 갈망,황홀경과 같은 행복에 대한 동경, 말은커녕 예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고통에 대한 동경이었소.

 

화재가 훨씬 더 끔찍할 거라는 막연한 예감과 형체 없는 관념이 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건 사실이고, 그 관념과 비교해 보면 현실이 너무 밋밋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오.

아무튼 그 화재는 내 속의 기대가 실망스럽게 깨져 버린 생애 첫 커다란 경험이었소.

 

환멸의 고통스러운 찌꺼기 없이 내 거창한 예감과 일치하는 그런 해방된 인생을 꿈꾸는 것이 나쁜 일이오?
수평선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삶을 꿈꾸는 것이 잘못된 일이오?

나는 그런 꿈을 꾸며 죽음을 기다리오.
아, 그런데 나는 죽음도 이미 지나치게 똑똑히 알고 있소.
내 인생 마지막 환멸을! 마지막 순간에 난 분명 이렇게 말할 거요.
아, 이게 죽음이구나. 그걸 내가 지금 겪고 있어.
그런데 대체 이게 뭐지?

 

...

 

조숙한 예술가는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천진난만한 시민은 행복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