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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어릿광대 (Der Bajazzo)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by 토마스 만 2020.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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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 (Der Bajazzo) - Thomas Mann, Deutschland 1897

다 지나 놓고 나서 품위 있게 결론 내리자면, 나는 내 인생과 그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구역질 나는 혐오감이 목을 조르고, 나를 몰아 대고, 나를 흔들더니 다시 내팽개친다.
물론 어쩌면 이 가소롭고 하찮은 일을 조만간 서둘러 해결한 뒤 재빨리 도망치는 데 필요한 원심력도 이 구역질이 제공할지 모른다.

이번 달과 다음 달도 계속 이렇게 살고, 아니 석 달, 반년까지 계속 이렇게 먹고 자고 나름대로 할 일을 하면서 지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겨울 동안 겉으로 그래 왔던 것처럼, 기계적이고 잘 짜이고 차분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래 보였을 뿐, 속에서는 격렬한 해체 과정이 처절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겉으로 초연하고 세상에 무심하고 조용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속으로는 더욱 치열하고 공격적이지 않을까?

물론 그래 봤자 소용이 없다. 사람은 어차피 살아야 하니까.
나는 내 이야기를 쓰려고 깨끗한 공책을 준비했다.

그런데 왜 이것을 쓰려는 것일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 심리를 알고 싶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결국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사실, 어떤 일이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면 위안이 되기는 한다.
혹은 순간적이나마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이나 아무래도 좋다는 무심함 따위를 즐기려고?
그렇다. 무심함이라는 것도 행복의 일종일지 모른다.

 

나는 구석에 앉아 마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같은 눈빛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펴보면서, 꿈꾸는 것 같은 감각적 삶이 좋을지, 아니면 권력을 누리는 행동적 삶이 좋을지 고민하곤 했다.
그러다 내 눈은 마지막에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에 머물렀다.

 

그것은 약간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감정이자,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힘에 대한 저항이자... 지금까지는 잠정적인 상태로만 이어져 온 내 상황이 이제 처음으로 확정되고 변경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약간 슬프고 먹먹한 기분이었다.

 

피아노에 앉아 어떤 행복감도 없이 공상만 하거나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날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온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 들어와 가슴을 후벼 팠다.
불안이 다시 엄습했다. 내가 예전에 알았던 그 고약한 느낌의 불안이었다.
그럴 경우 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가서 거리를 오가는 직장인과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자의 우쭐한 미소로 어깨를 으쓱했다. 정신적으로건 물질적으로건 여유롭고 한가한 삶을 즐길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세상에는 내게 어울릴 만한 마땅한 계층이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사람들과의 교제를 이용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유로운 길을 선택했을 때는 이미 그 사회와 단절하고 사교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무룩하다는 것, 이것이 행복한 자의 특성일 수 있을까?

마차가 지나가는 동안 나는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채 길가에 서 있었다.
그러다 마차가 다시 속도를 내어 빠른 속도로 사라지자 나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느낀 것은 기쁨과 감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야릇한 아픔도 밀려왔다.
질투일까? 사랑? 아니면 자기 경멸?

나는 이 감정을 끝까지 파고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나는 지금 어쩌고 있는가?

여기 멀리 어둠 속에 앉아,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여인이 저렇게 하찮은 인간과 잡담을 나누며 웃고 있는 모습을 원망 가득한 채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은가!

배제되고 주목받지 못한 채, 자격도 없는 이방인 처럼, 저들에 끼지 못하고 선 밖에 서서, 천민으로 추락한 나 자신에게 비참함을 느끼며...

 

"포도주 한 잔 주시오."
순간 처녀가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별 이상한 인간이 다 있다는 듯한 시선을 흘낏 던진 것 같은 느낌이 내 착각인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녀는 그와 나처럼 침묵하며 내게 포도주를 내밀었다.

나는 분노와 아픔으로 당혹스럽게 벌게진 얼굴로, 참담하고 한심한 꼬락서니로 시선도 들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서서 포도주를 몇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정신없이 인사한 뒤 홀을 벗어나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순간 이후 나는 끝났다.

 

나는 이제 살 수 없다.
불행한 사랑을 겪은 사람도 자기 자신을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기에, 내게 남은 것은 파멸 뿐이다.

 

나는 이 친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여전히 옛날처럼 당당하게 지내고, 행복한 자기 확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저 어색한 당황감과 자신감 없는 비굴한 태도만 남았을 뿐이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리 사태를 파악했다.

나를 꿰뚫어 보고, 깜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차갑게 변하고, 외려 자신이 우월한 듯이 굴고, 이 자리가 불편한 듯 안절부절못하다가 마침내 얼굴 가득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던지!
그는 예정보다 일찍 출발했다.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기에 남에 대해서는 진지한 의견을 갖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크게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너 스스로 존중하는 만큼 너를 존중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뻔뻔할 정도로 확신을 보여 주고, 양심의 가책 같은건 버려라.

너를 경멸할 만큼 도덕적인 사람은 없다.
네가 너 자신과 하나 되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만족감을 잃으면, 그리고 스스로를 경멸하는 모습을 보이면 남들도 너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나는 그 점에서 실패했다.

나는 이제 펜을 던지고 글쓰기를 끝낸다. 역겹고 구역질 난다.

 

 

...

시민도, 예술가도 되지 못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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