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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 Hermann Hesse, Deutschland 1906

by 토마스 만 2020.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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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 Hermann Hesse, Deutschland 1906

 

구름의 그림자가 서둘러 골짜기 너머로 흘러가고, 해는 이미 산기슭에 거의 닿아 있었다.

잠시 한스는 몸을 내던진 채 울부짖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 대신에 헛간에서 손도끼를 들고 나와서는 가냘픈 팔로 마구 휘둘렀다.

토끼집이 산산조각으로 쪼개져 버렸다.

나무 조각들은 이리저리 퉁겨 올랐고, 철못들은 삐걱 하는 소리를 내며 휘어지고 말았다.

지난해 여름에 쓰다 남은 썩은 토끼 먹이들이 밖으로 드러났다.

한스는 닥치는 대로 손도끼를 휘둘러댔다.

마치 토끼와 친구 아우구스트, 그리고 어린 시절의 옛 추억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기나 한 것처럼.

 

 

모범 소년 한스는 가슴이 저리는 듯한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얼어붙은 들판길을 걸어 비틀거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추위에 새파래진 뺨을 타고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잊을 수도 없고, 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죄악과 태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느 때와는 달리 아름다운 색깔로 무르익은 저녁 노을에 취한 나머지 한스는 하릴없이 뜰을 거닐고 있었다.

이따금 멈취 서서는 눈을 감고, 엠마의 모습을 떠올려보려고 애썼다.

이 모든 것들이 그를 황홀한 전율에 몸부림치게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얼굴만은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한스는 어느새 자기 손 안에 자그마한 술잔이 쥐어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잔에 담겨져 있던 술은 이미 거의 다 엎질러진 뒤였다.

한스는 남아 있던 나머지 술을 들이켰다.

그는 혼자서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와서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마을로 나왔다.

가옥이며 울타리, 뜰이 모두 기울어진 채 그의 곁을 빙빙 돌며 스쳐 지나갔다.

그는 너무나도 낙심하여 자신이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영원히 쉬고, 잠들고, 또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머리와 눈도 아팠다. 한스는 더 이상 걸을 힘조차 없었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가슴이 저리도록 아파왔다.

어렴풋한 상념과 추억들, 수치심과 자책감이 음울하게 물결치며 한스를 뒤덮었다.

한스는 큰 소리로 흐느끼며 풀밭에 쓰러졌다.

 

 

...

 

온실 속의 화초는 나약하고

우물 안 개구리의 시야는 좁다.

 

온실과 우물에 가둔 자들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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