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 타오르다 (Barn Burning) - William Faulkner, USA 1939
재판 때문이 아니라 이사를 가는 날이라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아버지는, 꼿꼿이 선 채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핏속에서 광분하는 비애와 절망을 느끼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내가 거짓말하기를 바라는 거야. 그리고 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아버지는 형이 앉은 앞자리로 오르더니 껍질을 벗긴 버드나무로 바짝 마른 노새의 등을 두 번 세차게,
하지만 전혀 흥분하지 않고 후려쳤다. 거기엔 어떤 가혹함도 배어 있지 않았다.
마차는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소년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이 지나면 늘 어딘가에 어떤 종류의 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일을 저지르기 전에 아버지가 다른 농장에 소작을 하겠다고 미리 입을 맞추어 놓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버지는 늑대와 흡사한 자립심과, 하다못해 감정을 자제하고서라도 이득을 챙기는 침착한 담력을 가지고 있었고, 낯선 이들은 그런 점을 인상 깊게 보았다.
소년은 나이가 더 들어서야 이때의 일을 떠올리며 왜 좀 더 큰 불을 피우지 않았을까 의문에 잠기곤 했다. 전쟁을 겪으면서 온갖 소모와 낭비를 목격했을 뿐 아니라 제 것 아닌 물건들은 거리낌 없이 탕진하는 못된 피를 타고난 아버지가 왜 모닥불을 피울 때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태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더 나이가 들었을 때는 진짜 이유를 간파해 냈다. 다른 사람에게 쇠나 폭약이 그렇듯, 아버지에게는 불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깊이 내재한 주요한 요소, 그것이 없다면 숨을 쉬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요소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무기였다는 것을, 그래서 존중하고 때때로 신중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넌 그들에게 다 털어놓을 뻔했다. 그자에게 다 말할 뻔했다고."
아버지는 전혀 흥분한 기색 없이 가게 앞에서 노새 두마리를 후려쳤을 때처럼, 마치 쇠등에를 잡으려고 막대기를 내리치듯, 손바닥으로 단호하게 그의 옆머리를 때렸다.
"애브너, 안 돼요! 맙소사, 제발, 애브너!" 소년이 일어나서 뒤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어떤 터무니없으면서도 제의적인 폭력을 위해 신중하게 차려입은 듯 모자에 코트를 걸친 모습으로, 기름통에 든 등유를 5갤런짜리 깡통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그의 팔을 끌어당겼고, 그는 등잔을 다른 손으로 바꿔 쥐고는 야만적이거나 흉악하지는 않게, 그저 강하게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
자부심, 긍지라고는 전혀없는 동물.
그런 아버지를 둔 절망과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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