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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킵 (The Keep) - Jennifer Egan, USA 2006

by 토마스 만 202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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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 (The Keep) - Jennifer Egan, USA 2006

1부

그냥 밀었다.
하위의 몸이 기울고 팔다리가 허우적대는 것이 느껴졌지만, 대니는 아무런 소리도, 심지어 풍덩 하는 소리도 기억할 수 없었다. 하위가 분명히 비명을 질렀을 텐데, 대니는 비명 한 자락 듣지 못했다. 기억나는 것은 오직 레이프와 함께 그곳을 비집고 빠져나와 미친 듯이 도망치던 소리, 동굴 벽 위를 빠르게 내달리던 레이프의 손전등 불빛, 동굴을 뛰쳐나왔을 때 훅 불어오던 후끈한 바람...

그러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너무, 너무 늦었다. 사흘 후, 사람들은 동굴에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하위를 찾아냈다.


2부 

문득 대니는 고개를 들어 믹을 보았다.
수영장 옆에 하워드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하고만 이야기하느라 믹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워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믹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다. 믹은 하워드에게서 몇 센티머터 떨어진 곳에서 얼어붙은 듯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대니가 고개를 들어 둘의 눈길이 딱 맞부딪쳤을 때(제 7단계), 대니는 지독히도 싸늘한 믹의 표정에 흠칫했다. 기계처럼 공허했다. 바로 그 순간, 대니의 마음속으로 알토가 밀려들어왔다. 아성의 꼭대기에 서서 아래 펼쳐진 풍경을 속속들이 보았던 그 순간처럼. 하워드는 믹이 가진 전부였다. 믹은 하워드의 넘버 투였다. 그리고 넘버 투는 이판사판 가리지 않는 법이다.
믹이 대니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단 한 걸음인데도, 대니는 아드레날인이 울컥 솟는 기분이었다.
이전에 느꼈던 모든 공포감, 속을 갉아먹는 벌레, 덫에 걸리고 쫒기는 느낌이 지금까지 아무데도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니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는 일 초 만에 손에 칼을 든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길게 휜 칼날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대니는 칼로 찌르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내가 그의 이마를 겨누고 총을 쏘았을 때 그는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 총알이 몸을 찢으며 관통할 때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생명의 빛이 꺼지는 광경을 주시했다.


3부

첫째 날 밤, 수업을 하러 가니 그들이 있었다. 쓰레기들.
책상에 비해 다들 몸집이 터무니없이 커 보였다.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고 호기심이 많아 보였지만, 레이 돕스는 예외였다. 야윈 몸에 머리칼이 짙고 까맸다. 미남이었다. 그러나 그의 파란 눈에는 생기라고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세 장 분량의 이야기를 써올 것.

어렸을 때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길 좋아했다. 이야기가 내 안에서 쉼 없이 샘솟아 넘쳤다.

상황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극에 달했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삶의 막장에서 뒹굴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나는 최초의 한 모금을 세스와 함께 했다. 나쁘다는 건 알았지만 경찰 노릇 하는 데도, 세스에게 애원하고 화를 내는 데도, 그가 집에 왔을 때 팸퍼스 기저귀를 그의 얼굴에 집어더지는 데도 넌더리가 나 있었다. 예전처럼 그와 유대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딸아이들이 낮잠을 자던 어는 날 오후, 세스와 함께 한 대를 피웠다. 세상에, 그때를 떠올리는 지금도 그 생각은 딱 일 분만 해야지, 안 그러면 내 몸 전체가 해갈을 모르는 굶주린 입으로 돌변하고 만다.


...
작문은 상상으로부터 나와서
또 다른 상상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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