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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주교 (The Bishop) - Anton Chekhov, Russia 1902

by 토마스 만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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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The Bishop) - Anton Chekhov, Russia 1902

 

성지 주일의 전날 스타로페트롭스키 수도원에서는 저녁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종려나무 가지를 나누어주기 시작할 무렵에는 벌써 열시가 가까웠고 심지가 다 타들어가서 촛불은 가물거렸다.

모든 것이 마치 안개 속처럼 희미했다. 성당의 어둠 속에서 군중은 마치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있었고,

벌써 삼 일째 몸이 불편한 표트르 주교 예하에게는 사람들의 얼굴이 늙었건, 젊었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관없이 모두 비슷비슷해 보였다.

 

못 본지 구년이 지난 생모 마리야 티모페예브나가 별안간 군중 속에서 나와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필경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혹은 어머니를 닮은 노파는 주교로부터 종려나무 가지를 받고 물러나더니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갈 때까지 줄곧 기쁨에 찬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주교를 응시하고 있었다.

주교의 얼굴에는 어찌 된 일인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예하는 아주 어린 시절, 거의 세 살 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평화롭고 소중했던,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

이제는 영영 흘러가 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그 시절은 어째서 실제보다 더 밝고 태평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걸까?

유년 시절이나 소년 시절 그가 병이 났을 때, 어머니는 얼마나 부드럽고 세심하게 그를 보살폈던가!

 

"암만해도 병이 난 것 같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열이 있어요!"

 

"우리가 못 본 지 벌써 구 년이 됐네요"

노파가 말했다.

"어저께 수도원에서 주교님을 얼핏 봤는데, 어쩌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의 기분은 갑자기 변해 버렸다. 그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녀가 이런 공손한 표정과 목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낯설어 보이면서 우울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어제처럼 머리가 아프고 다리도 부서질 듯 쑤셔왔다.

생선요리는 소태처럼 썼고 자꾸 물만 마시고 싶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 그는 자신의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가능한 모든 것을 성취했으며 여태껏 믿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은 불투명했다.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했으며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그에게는 무언가 가장 중요한 것이, 언젠가 막연하게 꿈꾸었던 그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시계 종이 두 번 울리는 소리와 벽 너머에서 시소이 신부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서 일 분 정도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다가 나갔다. 

마차인지 짐수레인지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누군가 현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노크 소리가 나더니 벌컥 문이 열리며 당번 수도사가 침실로 들어왔다.

 

새들은 노래 부르고 태양은 화창하게 내리쬐었다.

장이 벌어진 광장에서는 그네를 타네 손풍금을 울리네 하며 왁자지껄했고 손풍금 소리와 술 취한 이들의 주정이 요란했다.

큰길에서는 정오가 지나면서 경마기 시작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모두 흥겹고 태평했다는 얘기다.

바로 지난해에 그렸던 것처럼. 그리고 틀림없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한 달 뒤에 새 대리 주교가 임명되었으며 그때는 이미 아무도 표트르 예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완전히 그를 잊어버렸다.

다만 지금은 먼 시골 마을에서 보제인 사위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고인의 늙은 어머니만이

저녁이 되어 암소를 들여놓기 위해 여자들이 모일 때면 아이들 얘기, 손자들 얘기 그리고 자기에게 주교 아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꺼내곤 했다.

그녀는 주교 아들 얘기를 할 때면 혹시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조심했다.

사실 모두가 그녀의 얘기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

 

삶과 죽음.

깨달음과 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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