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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The Orderly World of Mr. Appleby) - Stanley Ellin, USA 1950

by 토마스 만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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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The Orderly World of Mr. Appleby) - Stanley Ellin, USA 1950

 

애플비 씨는 작은 체격에 점잔을 떠는 남자였다.

테 없는 안경을 쓰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넘긴 그는, 제대로 계획을 잡은 인생에는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점을 거듭 증명하면서 진지하게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었다.

 

사례의 주인공 X부인은 자택의 조잡한 소형 깔개 위에서 넘어져 사망했고 사고사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고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변호가가 X부인의 남편에게 살인죄를 물었고 검시를 통해 혐의를 증명하려던 차, 피의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사건은 갑작스레 종결되었다.

 

돈이나 밝히는 어리석은 무리에게는 가치 없어 보일지 모르는 물건들이 애플비 씨에게는 인생 그 자체임을 아내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족족 수집하여 분류, 정리하고 보존하던 애플비의 광적인 취미에서 비롯된 결과가 바로 골동품 가게였다.

 

마사 스터지스는 재산 규모로만 이제까지 형성된 '애플비 부인'의 전형적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애플비 씨의 옛 여인들과는 달리 그녀는 큰 체격에 다소 볼품없는, 생김새도 옷차림도 예절도 조잡한 여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옷도 주인장하고 비슷하게 입었네요. 아주 단정하셨는데, 자기 몸에만 꼼꼼하게 군 건 아니에요.
집도 매일 꼼꼼하게 살피시곤 했죠...... 집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것이 정확히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곤 하셨어요."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고급 저택은 꿈에서조차 보고 싶지 않는 무질서 자체였다.
중요하지 않아 던져놓은 것이라면 정리할 가치도 없다는 원칙탓일까?

 

아내가 제발 하지 말았으면 하고 기도하듯 바란 그 일이 하필 애플비 부인이 헌신적으로 행하는 단 하나의 일이었다.
그녀는 요리를 좋아해서 식사 시간이 되면 애플비 씨가 전혀 먹지 않는 요리를 잔뜩 들고 주방과 식당 사이를 분주하게 드나들었다.

 

아내의 장례식을 끝내고 집에 와 뜨거운 차와 토스트, 그리고 하나 더한다면 반숙 달걀 정도로 저녁을 해결하는 모습이 그가 즐기는 백일몽이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랬어요?"
애플비 씨의 손이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손에서 차가운 냉기가 내려와 골수에 스며들었다.

 


...

 

우연은 계획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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