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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인간실격 (人間失格) - 다자이 오사무, Japan 1948

by 토마스 만 2020.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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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人間失格) - 다자이 오사무, Japan 1948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야 누구라도 남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화를 내면 기분 좋을 리 없겠지만,
나는 화를 내는 사람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무서운 동물의 본성을 보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 본성을 감추고 있지만 어느 겨를에, 이를테면 소가 풀밭에서 느긋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가도 배에 붙은 등에를 꼬리로 찰싹 쳐서 죽이듯이, 느닷없이 인간의 무시무시한 정체를 분노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할 때면 나는 항상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전율을 느끼고, 이런 본성 또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격 가운데 하나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 대해 거의 절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이 나를 죽여주기를 바란 일은 수없이 많지만 남을 죽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그 끔찍한 상대에게 도리어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을 만큼 한없이 술을 마시고
비틀비틀 취해서 쓰네코의 얼굴을 마주보며 슬프게 미소 짓고,
그나저나 그말을 듣고 보니 이 여자가 이상하게 지치고 청승맞은 여자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또한 동시에 돈 없는 사람들끼리의 친화감, 그것이, 그 친화감이 가슴에 솟구치고 쓰네코가 사랑스러워서,
난생 처음으로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미약하나마 사랑의 마음이 꿈틀거리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토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가마쿠라 앞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여자는, 이 허리띠는 카페의 여급 친구에게서 빌린 띠라면서 허리띠를 풀어 곱게 접어서 바위에 얹었습니다.
나도 망토를 벗어 같은 자리에 놓고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단팥죽과 그리고 그 단팥죽에 기뻐하는 호리키를 통해 나는 도시 사람의 깍쟁이 근성,
혹은 안과 밖을 딱 잘라 구분하며 살아가는 도쿄 사람의 실체를 목격했습니다.
안팎의 구분도 없이 그저 끊임없이 인간의 생활에서 도망치기만 하는 얼간이인 나는 완전히 뒤처져 호리키한테까지 버림을 받은 것 같아 큰 낭패감 속에서 단팥죽과 칠 벗겨진 젓가락을 들고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는 것만 기록해두고 싶을 뿐입니다.

 

"꽃의 반대말은?"
"으음, 화월이라는 요릿집이 유명하니까, 달!
아, 그러면, 음... , 아, 잠깐, 여자?"

"맞혔어. 나온 김에 여자의 동의어는?"

"내장."

"이 친구, 도무지 시라는 걸 모르는군. 그러면 내장의 반대말은?"

"우유."

 

죽게 했던 게 아니다, 갈취했던 게 아니다,
라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희미한, 하지만 필사적인 항의의 소리가 솟구쳐도 그한편에서는 역시 내가 나쁜 놈이라고 곧바로 마음을 돌려버리는 이 습성.

 

"네가 가져오면 될 거 아냐!"
내 입에서 난생 처음이라고 할 만큼 열화 같은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나는 몸을 일으켜 혼자 소주를 마시고, 그리고느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한없이 한없이 울음이 터졌습니다.
어느새 내 등 뒤에는 요시코가 잠두콩이 수북한 접시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신께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됩니까.

 

지금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엄청 늘어서 사람들은 대개 마흔 넘은 나이들로 봅니다.

 

...

 

'인간'은

희극 명사인가, 비극 명사인가.

 

'실격'의 반대말은?

'합격'?

'합격'은 희극 명사인가, 비극 명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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